2014년 9월 29일 월요일

`부러진 사다리`…외환위기 이후 하위 20% 계층 소득 줄었다

매일경제 2014년 6월 2일 기사
 
◆ 한국판 피케티 보고서 ◆
 
 

한국의 소득불균형은 상위층의 소득 집중에도 원인이 있지만 하위층이 상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부서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51.6%는 근로장려금제도(EITC)를 '들어본 적도 없고 내용도 모른다'고 답했다. EITC는 저소득층이 일을 하면 세금 부담을 덜어주고 나아가 보조금까지 얹어주는 제도다. '일하는 복지'의 대표적 정책이다. 그런데 이 제도에 대해 '내용을 잘 안다'고 답한 이들은 2.95%에 불과했다. 2013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약 7000명의 복지패널들을 조사해서 나온 결과다.

복지패널은 정책효과를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소득층의 비중을 높게 잡아서 조사하는데도 EITC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나타난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저소득층에 '일하는 복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통계청의 가계조사를 국세청의 소득세 자료로 보정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1인당 세전 근로소득을 추정해 본 결과 하위 20% 소득은 외환위기 직후부터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김 교수는 "상위층의 소득비중이 증가하고 있음과 비교해 보면 계층별로 소득 동향이 상승, 정체, 하락으로 마치 부채 모양처럼 분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오히려 고소득자들이 금융소득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의 비중은 한국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2007년 상위 0.05% 계층의 소득에서 배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였지만 2012년에는 22.7%로 감소했다.

토마 피케티의 주장처럼 거액의 자산가들이 높은 자본수익률을 거둬서 부의 불평등을 더욱 키운다는 논리가 한국에도 적용되는지를 확인한 분석 결과는 아직 없다.

반면 저소득층의 소득이 하락하는 추세에 있다는 통계치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매일경제신문이 복지패널 샘플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8년간 저소득 가구가 중산층이나 상위층으로 올라간 비율은 매년 하락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05~2006년 사이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올라간 이들은 전체의 29%에 달했지만 2011~2012년 사이 이 비중은 22.97%로 떨어졌다.

반면 가계상태가 적자인 가구가 이듬해에도 적자를 유지할 확률은 2005~2006년 33.92%에서 2011~2012년 45.54%로 높아졌다.
 
 
여기서 저소득층이란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을 1위에서 꼴찌까지 나열했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소득(중위소득)보다도 절반 이상 소득이 낮은 가구를 의미한다.

결국 한국의 소득불균형은 상위 소득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측면도 있겠지만 하위 소득자들의 소득 감소 때문에 나타나는 현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은 각종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돼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유경준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전체 취업자의 40%인 1000만명 이상이 1차 고용안전망인 고용보험의 정식 가입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임금근로자 중 고용보험 적용이 제외돼 있는 근로자와 비임금근로자인 자영업자, 특수고용인, 농어민 등이 그들이다.

단시간 근로자의 경우, 사회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질 낮은 일자리 근무 형태가 지속된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 어렵고 소득분배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저소득층이 일하게끔 만드는 복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것도 문제다. EITC의 경우 국세청 신고절차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제대로 제도를 인지하는 이들이 드물다. 일종의 실업부조로 2009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저소득층 취업성공 패키지'도 근로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의 소득상승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인지도를 더 늘리고 시행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주가 원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양질의 일자리로 진입하는 것을 막는 '장벽'이다. 고용주들은 뽑고 싶은데 노조의 반대나 각종 이익단체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둔 벽들이 존재한다. 1997년부터 6년간 운용됐던 외무고시 2부제가 고위 외교관 자녀들의 관직 진출 길을 열어 주는 현대판 음서제도로 활용된 것이 하나의 사례다. 대표적 고소득 샐러리맨들을 고용하고 있는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대부분 전직 장관이나 재계 고위층의 자녀들을 선호한다.

[신현규 기자 / 박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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